언론보도

[가톨릭뉴스] 스스로 섬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더불어

기자명 정다빈  |   입력 2021.11.19 13:35   |   수정 2021.11.19 14:14



아동복지법 제3조에 따르면 ‘보호대상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경우 등 그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아동’을 말한다. 법률상 보호대상아동은 다시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적절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부모가 없는 아동 등 양육환경상의 보호대상아동, 아동 자신이 가진 신체적, 정서적 문제나 장애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존엄성을 침해당할 수 있는 아동, 가출 아동 또는 비행 아동 등 사회적·법적 보호대상아동 그리고 학대 피해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아동 등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신들을 마땅히 양육하고 보호할 가정의 울타리를 잃고, 아동보호시설로 온다. 그러나 이 ‘보호’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고 단단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또래들과 달리 보호대상아동에게 보호 종료 시기는 너무나 빨리 닥친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만 18세를 보호 종료 시기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과정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아동은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만 18세를 맞이한다. 20대 내내 또는 길게는 30대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지원과 보호 아래 자립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한국의 현실에서 만18세는 ‘자립’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다.

실제로 정부는 너무 이른 나이에 보호 종료를 경험하고 자립해야만 하는 보호아동의 종료 시기를 본인 의사에 따라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보호의 대상에서 벗어난다는 수동적 성격을 띠는 ‘보호종료아동’이라는 말 대신 자립을 준비하는 주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자립준비청년’으로 표현을 개선하는 정책도 시행 중이다.

오랜 시간 청소년과 청년들을 동반하는 사도직에서 일해 온 박종인 신부는 올해 국제교육개발 비영리기관 ‘기쁨나눔재단’에 파견받아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을 동반하는 활동의 총괄 역을 맡았다. 기존에 ‘보호종료아동’이라 불리던, 보호 시설을 떠나야 하는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의 진로를 함께 찾는 것이 주요 업무다.


박종인 신부 (사진 출처 = 기쁨나눔재단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yofsharing)


기쁨나눔재단이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아동 보호 시설,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에서도 매년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이 법적 성년에 도달하고 시설을 떠나야 할 시기를 맞는다. 박종인 신부는 이 시기를 맞는 청년들과 만나 아이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한다.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하는 청년들도 있지만, 진로를 찾기 위해 좀 더 시간을 갖고자 하는 아이들도 있다.

특별히 더 걱정되는 청년들도 있다.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다.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은 특별한 돌봄이 필요하다. 만 18세가 넘어 독립해야 하는 이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하고 시설 인근에 집을 구해 살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실제로는 혼자서는 생활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꿈나무마을의 자립지원팀에서도 청년들을 돕기 위해 연락하고,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지만 연락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이 외로움을 못 견뎌서 그런 건지, 집을 구해 줘도 지인 집을 전전하면서 살아요. 그러다 보면 지인들도 싫은 내색을 하고, 쉼터에도 가서 며칠이고 머물다 결국 쫓겨나고 다시 상처받고 그런 과정이 반복됩니다. 단지 집을 구해 주고 지원금을 주고 그런 문제가 아닌 거에요. 가끔 꿈나무마을로 돌아와서 밥 한 끼 사 달라고 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박종인 신부는 이런 아이들을 위해 ‘밥집 알로’ 개소를 준비 중이다. 시설을 떠났지만 아직 단단한 생활 기반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을 위해 하루 한 끼 식사를 제공하는 밥집을 열기 위해 이미 꿈나무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정집 건물 두 개 층을 임대했다. 당장 올해까지 시설에 머물다 떠날 아이들이 이제 밥은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 올해 안에는 밥집을 열기로 결심했다.

“일단은 시설을 떠난 아이들을 하루 한 끼라도 잘 먹이는 것이 목표에요. 그런데 그 이상 기대가 있다면 하루에 한 번 서로 얼굴 보고, 건강은 어떤지 좀 보려는 목적도 있어요. 약은 잘 먹고 있는지, 집에는 잘 들어가는지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도 있겠죠.”

기쁨나눔재단은 이미 올해 초 응암역 근처에 꿈나무마을 아이들을 비롯해 이미 시설을 떠난 졸업생들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 ‘카페 알로’를 열었다. 처음에는 단톡방을 통해 홍보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추석 연휴 무렵부터 한 그룹 한 그룹 카페를 찾더니 점차 손님이 늘고 있다. 졸업한 친구들도 들러 놀다 가고, 박종인 신부와 생활 상담도 하고 분식도 시켜 먹는다.

“졸업하고 이미 꿈나무 마을을 떠난 친구들과도 이렇게 서로 보고 같이 놀면서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고 싶어요. 아이들만 원하면 공간을 활용해서 과외 수업을 하거나 요리 수업을 할 수도 있고요. 푹신한 방석도 마련해 둬서 요가 같은 것을 같이 할 수도 있어요. 아이들이 더 자주 찾아와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청년대안공간 까페 알로, 밥집 알로. (사진 출처 = 기쁨나눔재단 페이스북 갈무리)


시설을 떠났거나 떠나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쁨나눔재단은 이처럼 청년들의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자 노력 중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아이들의 공백을 메우기에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박종인 신부는 가장 힘든 것은 ‘동기부여’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은데, 10명 중에 2명 정도가 대학 진학을 고려하는 아이들이에요.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만 할 수 있다면 저로서는 간이고 쓸개도 내놓고 싶을 만큼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게 쉽지 않아요. 아무리 시설에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아도 부모의 부재는 큰 상실이고, 많은 아이들이 깊이 상처받는 체험들이 있었죠. 마음의 상처가 아이들을 스트레스 상황에 취약한 성향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 금방 포기하고 그만두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 이 아이들이 정말 스스로 힘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걱정되고요.”

기쁨나눔재단이 운영하는 ‘카페 알로’나 오픈을 준비 중인 ‘밥집 알로’도 결국 자립 준비 청년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립’은 말 그대로 ‘스스로 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종인 신부는 이 공간들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때까지 나름대로의 생활의 규칙을 만들고, 마음을 돌보며 좀 더 편안하게 세상과 관계 맺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 아이들이 가능하면 대학에 진학했으면 하는 것도 꼭 대학에 가는 것이 사회적 성공을 보장해서가 아니라 꿈나무 마을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보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환경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관계를 형성해 보는 경험이 앞으로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거든요.”

각자의 상처와 상실을 안은 아이들 곁에 머물고 함께하는 일상은 결코 쉽지 않다. 매일매일 새로운 풍파가 닥치고, 시설에서 일하는 수도자들과 선생님들도 때로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아슬아슬한 일상을 지탱해 주는 힘은 역시 괴로움보다 더 큰 보람이다.

“저는 이제야 제가 어른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제가 수도자니까 아이가 없잖아요.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진심으로 어울리고, 아이들의 진로를 함께 걱정하고, 아픈 아이들을 돌보면서 나는 이제야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그러면서 어른이 되고 있다고 느껴요.”

박종인 신부가 총괄하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에 동참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기쁨나눔재단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지원캠페인 안내 페이지'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지원캠페인 바로가기 (https://www.gpnanum.or.kr/independence)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