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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레바논에서의 기도 (조창모 신부님)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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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의 성요셉 성당 ⓒ조창모SJ


 

 저는 작년 2025년 9월에 제삼수련 (Tertianship) 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하여 레바논에 입국했습니다. 제삼수련은 최종서원 전에 예수회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수도 생활을 성찰하고 또 앞으로의 여정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들을 향한 더욱 깊은 사랑과 열정으로 일하기 위하여 자신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전 세계의 여러 국가에서 예수회원들을 위한 제삼수련 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데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는 이곳 레바논에서 영어로 제삼수련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저는 현재 튀르키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과 멀지 않은 레바논의 제삼수련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이 중동의 정세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장래의 사도직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가자지구 내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이 지속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주변 중동국가들의 정세가 이처럼 급격히 악화되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레바논은 중동국가 중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과거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인이었지만 현재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약 35퍼센트 정도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마론파 카톨릭 신자들이 가장 큰 그리스도교 집단입니다. 레바논의 그리스도인들은 수니파, 시아파 무슬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은 마론파 그리스도교에서,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에서, 그리고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에서 선출하는 독특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 레바논은 중동의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중동의 파리로 불리는 전성기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교 진영들 사이의 갈등 및 여러 이유에서 비롯한 내전이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지속되면서 국가의 기반이 붕괴되고 약 1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사망하는 아픈 역사를 겪었습니다. 

 

 1990년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시리아의 내정 간섭 및 레바논 남부에서의 헤즈볼라의 영향력 증가로 불안한 정치적 상황은 지속되었고 친서방, 친시리아, 친이란 세력들 간의 정치적 분열은 깊어져 갔습니다. 특히 불안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군사적 충돌이 반복되면서 이 나라는 전쟁으로 인한 긴장과 직접적인 피해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후에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이 다시금 시작되면서 레바논의 국민들은 다시금 큰 고통과 시련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두 세력 간의 충돌 가운데 이미 레바논에서만 1,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주거지역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들입니다. 


 무력 충돌로 인한 대피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들의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9일에는 레바논의 남부 국경 지역에 위치한 그리스도 신자들의 마을에서 피에르 알라이(Pierre el-Rai)라는 이름의 마론파 카톨릭 신부님이 이스라엘군의 탱크 포격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신부님은 탱크의 포격으로 무너진 민가의 잔해에서 부상자들을 돕고자 달려갔는데 이어진 포격으로 큰 부상을 입은 후 돌아가셨습니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더불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쟁을 피하여 베이루트나 레바논의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피난민들을 향한 구호 활동 역시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현재 남부 지역에 위치한 상당수의 성당과 수도원의 시설이 파괴, 손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의 많은 성당들이 피난민들을 수용하고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구호 활동을 지속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수회 신부님들이 사목하는 베이루트의 성요셉 성당도 전쟁 발발 후 곧장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회 난민 봉사기구 (Jesuit Refugee Service) 소속 신부님, 수사님들과 직원들, 그리고 본당의 신자들이 성당에 모여든 피난민들을 돌보고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성당을 방문하였는데 그 당시 약 200명 가량의 피난민이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성당의 강당과 교실 등에 비좁게 놓여있는 스티로폼 매트리스들을 보니 이미 수용인원의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성당 밖에는 부족해 보이긴 하지만 급하게 마련된 듯한 이동식 샤워실 및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분들 중에는 에티오피아나 스리랑카와 같은 외국에서 온 이주민들이 많이 보였는데 이들이 레바논 정부나 다른 구호 기관에서도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당의 공간들이 피난민들의 숙소로 전환되면서 기존에 성당에서 이루어지던 교육 및 친교 활동이 예전처럼 이루어 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불평하지 않고 피난민들을 위한 식사 준비 및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신자분들의 성숙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의 힘에 압도될 수 있는 어두운 시간 속에서 우리들 맘속에 간직한 이웃을 향한 사랑과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깊이와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지난 3월 23일은 레바논에서 많은 사랑과 공경을 받는 라프카 성녀의 축일이었습니다. 2001년에 성인품에 오른 수녀님은 삶 속에서 그분이 보여준 성덕과 희생으로 많은 이들을 감화 시켰습니다. 그분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를 나누고 싶습니다. 1860년 수녀님이 성당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지금처럼 수녀님은 부족들 간의 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하루는 한 아이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민병대를 피하여 수녀님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수녀님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자신의 치마 밑에 숨겨주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주저함 없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던 거룩한 사랑의 마음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저녁 라프카 수녀님의 축일 미사가 끝난 후에 한 교우분이 저에게 다가와서 영어로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요?” 저는 “레바논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감사하다고 대답하신 후 계속 기도를 부탁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저는 예정대로라면 5월 중순에 제삼수련 프로그램을 마치고 레바논을 떠나겠지만 불안한 정세 속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 많은 분들은 삶과 신앙 안에서 어떤 희망과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고 계신지 궁금하였습니다.

 창세기 18장에는 소돔의 멸망을 막기 위하여 하느님께 간청하는 아브라함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은 소돔에서 열 명의 의인을 찾을 수 있다면 소돔을 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곳에서는 열 명의 의인마저도 찾을 수 없었기에 소돔은 불길 속에서 멸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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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다시 중동과 세계에서 번지고 있는 적개심과 욕심, 폭력과 전쟁의 불길이 온 세상을 휩쓸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맘을 아프게 하는 수많은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일하는 의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을 죽음과 멸망으로 이끌도록 충동하는 어두움의 힘에 우리가 굴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시기 동안 우리들의 기도와 나눔을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과 세상 속에서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과 평화가 자라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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