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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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기쁨나눔파트너> 캄보디아 NGO봉사단 허인우 단원, 2년 간의 발자취

2026-04-28

<기쁨나눔파트너>
기쁨나눔은 전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트너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이번 시간에는 캄보디아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에서 *WFK-NGO봉사단으로 활동을 한 허인우 단원을 소개해드립니다.


*월드프렌즈코리아(WFK) KOICA-NGO봉사단이란,
KCOC, KOICA, 국제개발협력 기관(NGO)이 협력하여 지구촌 곳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국제개발협력 기관의 사업 현장으로 봉사단원을 파견하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입니다.




Q1. 안녕하세요 허인우 단원님, 자신을 소개하는 한 문장이 있다면 뭐라고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행동으로 소통한 허인우, 언어를 익히는 것보다 몸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먼저 습득해 버렸어요.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 현지 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사실 대화가 잘 안 되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힘을 빌렸지만, 결국은 몸으로, 행동으로 더 많이 소통하게 되더라고요. 

캄보디아 분들은 아는 사람을 초대하는 것에 대해 관대합니다. 저도 학교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고 초대를 자주 받았습니다. 초대해주시면 기쁘게 가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같이 먹고, 같이 놀고, 말보다 행동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그 경험이 다른 분들과의 관계를 맺는 데도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저를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행동으로 마음과 생각을 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2. 행동으로 마음과 생각을 전한 사람! 멋지네요, 단원님은 캄보디아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활동에 대한 소개를 안들어볼 수 없겠죠?


1) 캄보디아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하비에르 예수회 학교는 캄보디아 북서부 국경 근처 지역, 시소폰이라는 마을에 있어요. 이곳은 시골이고, 발전이 더딘 도시라서 학업이 필요한 학생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업의 기회가 더욱 필요한 곳이에요. 그래서 학교는 그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려고 노력하는 곳이구요. 

선생님들과 직원분들도 대부분 동네 분들이고, 동네 어른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와서 배우고 가는, 서로 기회를 주고받는 곳이죠. 저희 학교처럼 학업 성적이 아니라 가정 형편을 이해하고 장학금을 주는 학교는 이 지역에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정말 의미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2)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가 기억이 날까요? 허인우 단원에게 학교가 어떤 느낌으로 와닿았는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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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 마치 자연 생태공원에 온 것 같았어요. 입구부터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고, 큰 도로를 따라가 보면 건물 몇 개가 보이고, 다시 나무가 왕창 심어져 있는 그 푸르른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리고 또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정말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제 곧 저기에 섞여서 함께 생활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와 설렘이 있었어요."


3) 허인우 단원이 학교에서 맡은 역할은 어떠했나요? 봉사단을 기대하면서 상상하던 역할과 비슷했는지 많이 달랐는지 궁금해요

"사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할 때, 내가 학교에 뭘 해줄 수 있을지 잘 몰랐어요. 언어도 부족하고, 전공도 환경공학이라 학생들과 쉽게 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거든요. 또 내가 가진 특기나 재능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까 걱정도 많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다 주자'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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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졸업앨범 제작, 학교 신문 만들기, 피아노와 음악 교육, 사진 기록 등 정말 다양한 일을 했어요. 예체능 교육은 캄보디아에 부족한, 정말 필요한 교육이예요. 저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직원분들에게도 피아노, 드럼을 가르쳤어요. 또, 사진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카메라가 있다는 이유로 학교 사진작가 역할도 했고, 학교 자료를 정리하는 일도 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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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수업 중, 계이름 쪽지 시험을 통과한 학생을 찍어준 기념사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줄 수 있는 건 다 주자’는 마음이었기에 기대와 현실의 간극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모든 활동들에 의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4)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 대한 사진도 많이 남겨주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면 사진과 더불어 설명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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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학생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저와 함께 찍은 셀카예요. 스스로에게 가장 큰 변화를 느끼게 해준 의미 있는 사진인데요. 파견 1개월 쯤 지났을 때였어요. 미술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미술 교실에 와서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가는 방과 후 교실이 있었어요. 해당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이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운 3~4일 정도 제가 대신 학생들을 돌보아 주었던 때였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이 마치면 그림을 선생님에게 맡겨 보관을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두 명의 학생이 저에게 그림을 선물로 줬어요. '단 며칠이지만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의미였죠. 그 순간 정말 감동이었고, 저도 평소에는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그때는 먼저 학생들에게 셀카를 찍자고 제안했어요. 이 셀카가 계기가 되어, 그 이후로 많은 학생들, 선생님들,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셀카를 열심히(?) 찍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추억으로 선명히 남더라구요."


5)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나요? 2년 간 지켜보며 많이 변하거나 성장한 친구의 이야기도 좋고 언어가 잘 통하지는 않지만 친해진 학생 등,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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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데이빗이라는 친구예요. 작년, 고등학교 2학년(11학년) 때부터 알게 됐는데, 기타를 독학으로 배웠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어요. 피아노 수업에 들어온 이유도 기타 악보뿐 아니라 피아노 계이름이 적힌 악보를 읽고 싶어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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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생들은 어렵게 따라오는데, 이 친구는 정말 빠르게 습득하더라고요. 기숙사에서도 시간이 날 때면 항상 기타를 치고, 음악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다고 질문을 많이 한 학생이었어요. 언어가 잘 통하지 않으니 AI 번역기를 돌려가며 음악 이론을 설명해주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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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2학년이 되어 대학 입시 준비로 그 좋아하던 기타를 잠시 내려놓고 공부에 집중하고 있지만, 또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어린 친구이지만 정말 성숙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데이빗이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입니다."



Q3. 봉사단 활동을 처음 1년 한 후에 추가로 1년 간 연장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연장 결정은 생각보다 빨리 해야 했어요. 6개월이 남은 시점에 연장 여부를 선택해야 했는데, 그때 제가 시작한 뉴스레터, 졸업앨범 등 여러 활동이 6개월 내로 끝날 것 같지 않았어요.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내가 맡은 일은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1년을 더 연장했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어요. 저는 제 활동들이 학생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라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잘 만들어 주고 싶고 완성품을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계약 기간이 끝나는 시점까지 열심히 해도 되었겠지만, 저는 맡은 역할이 있다면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어요."



Q4. 캄보디아라는 나라에서 봉사활동 이외에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봉사활동 시간 이외에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면 그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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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위해 만든 어묵두부전골>


"평일에는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에 시간을 보냈어요. 학생들과 더 잘 소통하고 싶어서 언어공부를 했고, 난생처음 해보는 분야였기 때문에 기초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주말에는 동내 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재료를 사와 요리해,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걸 즐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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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직접 숙성한 연어를 플레이팅 하다가 찍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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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을 좋아하는 기숙사 학생들을 위해 다른 봉사자들과 협력해 계란말이와 돼지두루치기를 준비해 학생들과 같이 밥을 먹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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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사실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었는데, 예수회 신부님들이 활동하는 소규모 마을을 방문하는 게 저에게는 여행보다 더 값진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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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크나흐로미어(Khnach Romeas)라는 곳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곳을 방문한 이유는 유스호스텔 완공 기념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저는 태국과 캄보디아 분쟁으로 인해 피신하는 이동 도중, 해당 행사에 잠시 참여하고 다시 프놈펜으로 내려갔습니다. 건물이 완공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을 사람들의 피난시설로도 쓰였기 때문이예요. 당시 상황과 그 공간이 가진 의미 때문인지, 그 곳은 제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Q5. 태국과의 이슈로 중간에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일 듯 싶은데 어떤 상황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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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국경 분쟁이 있었을 때, 프놈펜으로 피신을 가기 위해 밤 늦은 시간까지 짐을 싸고 있던 때예요, 땅이 울리는 듯한 진동 소리를 들었고, 그게 멀리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됐죠. 대피하러 내려가는 길에 평소에도 많이 다니던 길에서 새로운 풍경을 봤어요. 많은 트럭과 오토바이, 사람들이 흙 터에 모여 있었고, 그분들은 이미 국경에서 저희 지역까지 대피해 온 분들이었어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여기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안전하게 프놈펜으로 피신할 수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모르는게 많고, 이렇게 바로 대피를 할 수 있는 외국인이구나’ 하는 거리감과 안타까움, 또 현지인들의 현실이 얼마나 힘든지 실감하게 됐어요."




Q6. 한국으로 돌아가면 캄보디아의 무엇이 가장 그리울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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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그리울 것은 ‘사람’들과 또 ‘사람들 간의 분위기’예요. 캄보디아에서는 누구든지 초대하고, 저도 초대에 응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타인이지만 가족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분위기, 그런 공동체 문화가 정말 그리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편안함과 정을 캄보디아에서 많이 느꼈어요."



Q7. 2년 간의 NGO봉사단원 활동을 되돌아 보면, 처음의 순간과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인우 단원의 모습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요.

"우선은 피부가 많이 탔구요. :)

원래 저는 내향적인 사람이었어요. 친한 친구나 잘 아는 사람 아니면 먼저 다가가거나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했죠. 그런데 2년 동안 봉사단원 활동을 하면서, 이제는 먼저 다가가고,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웠어요. 생각이 많아서 망설이던 제가, 이제는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뭔가를 같이 하자고 말하는 걸 어려워했어요. 지금은 편하게 무엇이든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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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영어 동아리 학생들의 시엠립 현장체험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학생이 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이왕 찍는 김에 재미있게 찍어 보려고 노력한 사진입니다.>


"2년간의 경험은 제 인생의 초석이 되었어요. 사실 저는 장래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이 없었고, 지금도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배운 게 정말 많아요. 내가 학생들에게 배움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행복이 무엇인지, 내 마음속에서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찾는 방법을 배웠어요. 앞으로도 지난 2년 간의 시간처럼 타인을 돕는 삶을 살고 싶고, 남들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기준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해요."



Q8. 마지막으로, 고생한 자신에게 그리고 하비에르 학교 공동체에 전하고 싶은 한 마디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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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학교 공동체 모두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그 한계를 너그럽게 인정해주고, 저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서로를 생각해주고 배려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해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는, 참 많은 잔소리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2년 동안 내 약한 부분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면, 이 경험이 의미 있게 남을 수 있도록 이제 한 발 내딛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말해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성장해보자고요."